데덴찌부터 앞뒤뽕까지, 한국 편가르기 구호가 지역마다 다른 이유

들어가며
"엎어라 뒤집어라~ 쫄려도 한판 데덴찌!" 어릴 적 골목이나 운동장에서 편을 나눌 때, 혹은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풋살이나 PC방 내기 팀을 짤 때 누구나 한 번쯤 외쳐본 구호일 겁니다. 둥그렇게 모여 서서 손바닥과 손등을 내미는 이 단순한 행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DNA 같은 문화죠.
그런데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나, 다른 지역 출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편가르기를 하려고 손을 모으는 순간, 묘한 정적이 흐르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누군가는 "데덴찌"를 외치고, 누군가는 "덴디신디"를 부르짖으며, 또 누군가는 마치 노동요처럼 긴 랩을 쏟아냅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동네마다, 지역마다 편가르기 구호가 다를 수 있을까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오직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며 동네의 결계(?)를 형성했던 이 독특한 골목 문화.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써왔던 지역별 편가르기 구호의 디테일과 그 속에 숨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짚어볼게요.
현장 디테일
한국 편가르기 구호의 가장 큰 특징은 손바닥과 손등을 내민다는 룰은 전국이 똑같지만, 입으로 뱉는 소리는 도(道) 단위를 넘어 시(市), 심지어 동(洞) 단위로도 갈린다는 점입니다.
먼저 수도권의 압도적인 1위 구호는 단연 "데덴찌"와 "엎어라 뒤집어라"입니다. 여기서 '데덴찌'의 어원을 두고 많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일본어 '테텐치(手天地)'에서 왔다는 분석입니다. 손(手)을 하늘(天)과 땅(地) 방향으로 뒤집는다는 의미가 일제강점기 놀이 문화를 거쳐 발음이 변형되어 굳어졌다는 것이죠.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이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인천의 경우 한 발 더 나아가 "데덴찌엔 후레시"라는, 알 수 없는 단어가 추가된 로컬 룰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충청도 지역은 특유의 여유로움과 귀여움이 묻어나는 "앞뒤뽕" 또는 "엎어라 젖혀라"를 주로 씁니다. 짧고 직관적이죠. 반면 전라도 지역은 거의 판소리에 가까운 리듬감을 자랑합니다. 광주에서는 "편뽑기 편뽑기 장끼세요 알코르세요"라며 긴 템포로 손을 흔들다가 마지막에 승부를 봅니다. 이 구호를 처음 듣는 타 지역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타이밍을 잡지 못해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경상도는 무뚝뚝하고 강렬한 지역색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부산은 "젠디 덴디 묵찌", 대구는 "덴디신디" 등 속도감 있고 타격감 넘치는 세 글자~네 글자 구호로 빠르게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이처럼 편가르기 구호는 그 지역의 언어적 습관과 리듬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일종의 '문화적 지문'과도 같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타 지역 출신 아이돌이나 배우들이 구호 타이밍을 못 맞춰 헤매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뼛속 깊은 로컬리티 때문입니다.
실용 정보
다양한 출신이 모인 자리에서 편가르기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소소한 팁들을 소개합니다.
1. 대통합의 주문: "엎어라 뒤집어라" '데덴찌'나 지방 특유의 구호들이 충돌할 때, 가장 무난하게 전국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구호는 표준어 기반의 "엎어라 뒤집어라"입니다. 의미가 명확하고 박자를 맞추기 쉬워 다른 지역 사람들과 만났을 때 가장 빠르게 합의를 볼 수 있는 마법의 문장입니다.
2. 결과 승복의 심리전: "쫄려도 모르기" 편가르기 구호의 꽃은 바로 본 구호 뒤에 붙는 '추임새'에 있습니다. 손을 내밀고 편이 갈렸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해!"를 외치는 얌체들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심리적 장치를 걸어둡니다. "쫄려도 한판 데덴찌", "쫄려도 모르기 이번엔 진짜" 같은 멘트를 붙여, 결과에 대한 절대 승복을 강제하는 것이죠. 실전에서 편을 나눌 때는 이 추임새를 끝까지 외쳐서 쐐기를 박는 것이 국룰입니다.
3. 안 맞으면 가위바위보로 좁히기 인원이 3명처럼 애매하거나 편가르기 구호로 도저히 결판이 나지 않을 때는, 가장 클래식한 "가위바위보"에서 같은 걸 낸 사람끼리 묶는 방법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도 현명한 현장 스킬입니다.